“병원이 찾아 간다”… 환자 곁에서 출발하는 의료의 시작 ① [인터뷰]

  • 기자명 권태원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입력 2025.07.19 10:00

흰 가운에 왕진가방, 너털웃음 지으며 동네 어르신과 인사하는 왕진 의사의 모습은 이제 오래된 영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 현재는 국내 의료법에 따라 방문 진료를 이어가기가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왕진, 즉 방문 진료는 응급한 상황이거나 환자 또는 보호자의 요청에 의한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조차도 환자 요청에 의한 것인지 입증하기 힘들거나, 의료 수가 부족 등의 문제로 적극 시행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환자에게 방문 진료는 여전히 필요한 의료 서비스다. 이에 국가에서는 지난 2019년 12월부터 이런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방문 진료에 따른 적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 ‘일차의료 방문 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방문 진료 수가 정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을까, 또 방문 진료가 활성화되고 정착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방문 진료를 수행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 김태형 원장(고려외과의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즘은 왕진 가방을 든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출처: AI 이미지 생성(Gemini)
요즘은 왕진 가방을 든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출처: AI 이미지 생성(Gemini)

Q. 병원 진료와 비교해 방문 진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당연하게도, 가장 큰 강점은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 내원이 어려운 환자에게 직접 방문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진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고,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동네 의원도 하나의 사업자라고 본다면 아직까지는 참여 의원이 적기 때문에 경쟁도 적습니다.

Q. 재택의료센터 운영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방문 진료와 재택의료센터 운영은 제도적, 구조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수가 체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나는데, 재택의료센터는 ‘방문 진료료’ 외에도 ‘재택의료 관리료’를 중복 산정할 수 있어 수익성 측면에서 더 유리합니다.

일차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방문 진료는 진료 횟수나 방식에 제한이 있으며 수가도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는 재택의료센터 체계로의 전환 혹은 연계 운영 전략이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 면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Q. 경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만큼 현재 방문 진료의 활성화가 더디다는 것인데,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문 진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5%도 안 될 만큼 낮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가가 낮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방문 진료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와 같이 자격이 있는 필수 인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일차 의료기관이나 중소 병의원 입장에서는 인력 확보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또 현재 방문 진료의 수가는 이동 시간, 의료진의 체류 시간, 환자 상태에 따른 진료 부담 등을 반영하기엔 부족합니다. 그렇다 보니 지속적인 운영이 어렵고, 참여 기관도 제한적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만 해도 개원의 20% 이상이 방문 진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적절히 벤치마킹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춘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태형 원장|출처: 고려외과의원
김태형 원장|출처: 고려외과의원

Q. 방문 진료 활성화를 위해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요?
물론 실제 방문 진료 현장에서의 불편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처방을 하거나 청구하기에 시스템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모바일 청구 시스템이 아직 미흡하고, 환자 기록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연동되지 않아 효율이 떨어집니다.

장비도 문제가 되는데, 방문 진료용 장비를 사용하려면 사전 신고가 필요하고 급여 인정이 복잡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정비해야 방문 진료가 실질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방문 진료가 정말 필요하지만, 가능한지 모르는 환자들에게 질환 관리의 차원에서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방문 진료는 단순한 편의 차원을 넘어서, 질환의 조기 발견과 악화 방지를 위한 중요한 의료 접근 방식입니다. 만성 질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경우 병원 방문을 미루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괜찮다고 느끼더라도 정기적인 의사의 방문을 통해 활력징후를 점검하고, 조용히 진행될 수 있는 폐렴이나 탈수 같은 문제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도적으로는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하면 가까운 방문 진료 가능 의료기관이나 재택의료센터를 안내받을 수 있으며,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도 지역별 방문 진료 병의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점차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방문 진료의 필요성이 더 증가할 것 같습니다. 방문 진료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고령화 사회라고 해서 모든 노인의 의료 접근성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비교적 건강한 노년층은 병원을 방문하여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 신체적 한계, 인지 저하 등 다양한 이유로 병원 방문이 어려운 분에게는 방문 진료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야 합니다.

방문 진료가 보다 널리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변화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의료인의 생각 전환도 중요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의 상황과 요구에 따라 능동적으로 진료의 형태를 바꾸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미 외래 중심의 개원가는 포화된 상황이며, 오히려 지역사회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방문 진료야말로 새로운 의사의 역할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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