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셨는데 휘청”... 보행 이상 부르는 ‘척수 압박’이란 [통(痛)쾌한 해답]
- 기자명 이진경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입력 2025.07.24 20:00
- 수정 2025.10.28 15:09
팔·다리의 저림, 중심이 흔들리는 보행, 점점 빠져가는 근력. 단순한 노화나 피로감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척수에 가해지는 압박으로 인한 신경 손상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척수는 뇌와 온몸을 연결하는 중추신경계의 핵심 기관으로, 압박이 심해질 경우 마비나 배뇨 장애처럼 되돌릴 수 없는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선제적 관리가 요구된다.
신경외과 정영하 교수(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는 “척수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라며 “일부 환자에서는 신경 증상이 급속히 악화돼 응급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진행되기도 하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 시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척수 압박’이란 무엇이며 어떤 증상과 위험을 동반하는지, 그리고 이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영하 교수와 함께 자세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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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고속도로’ 척수, 디스크·외상 등으로 압박될 수 있어
우리 몸의 뇌는 마치 종합 사령탑처럼 모든 명령을 내리는 기관이다. 이러한 뇌의 명령을 팔, 다리, 몸통 등 전신으로 전달하고, 통증, 온도, 촉각 같은 감각 정보를 다시 뇌로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척수다.
정영하 교수는 “척수는 쉽게 말해 뇌와 몸을 연결하는 ‘신경 고속도로’와 같다”라며 “척수 압박은 이 고속도로가 막히거나 손상돼, 뇌와 몸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척수가 눌리게 되면 혈류 공급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척수 조직에 부종과 염증이 발생한다. 시간이 경과하면 신경세포 자체가 손상되어 감각 저하나 운동 기능 저하 같은 신경학적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척수 압박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퇴행성 변화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디스크(추간판 탈출증)나 척추관 협착증, 후종인대 골화증처럼 척추 주변 구조물이 두꺼워지고 좁아지면서 척수를 압박하게 된다. 외상 또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교통사고나 낙상 같은 외부 충격으로 척추뼈가 골절되거나 출혈이 생기면 척수가 직접 손상되거나 눌리게 된다.
감염에 의한 압박은 면역력이 저하됐을 때 더 쉽게 발생한다. 척추 결핵이나 화농성 척추염처럼 척추뼈에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차면서 그 압력으로 척수가 눌릴 수 있다. 종양에 의한 척수 압박은 척추에 생긴 암 자체이거나, 다른 장기에서 전이된 암세포가 척추로 퍼지면서 발생한다. 이 밖에도 침 치료나 주사 등 시술 후 생긴 혈종(출혈성 덩어리)이 척수를 눌러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 교수는 “척수 압박은 특히 몸을 많이 쓰는 직업군이나 고령층, 전이성 척추암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다”라며 “당뇨병·장기이식·결핵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의 경우 의심증상이 있다면 빠른 진료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보행 이상·사지 근력 저하 나타나… 다른 질환과 혼동되기도
척수 압박은 다양한 신경학적 이상을 유발하는데, 그중에서도 보행 이상과 사지 근력 저하는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이다. 정영하 교수는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증상은 걷는 모습이 어색하고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경우로, 환자들은 ‘휘청거린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걷는다’고 표현할 때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 손의 정교한 움직임이 떨어져 젓가락질이나 단추 채우기가 어려워지고,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척수가 눌리는 부위에 따라 통증이 나타나며, 팔이나 다리로 퍼지는 방사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척수 압박이 외상이나 암 전이처럼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서서히 악화되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기 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팔다리의 저림이나 감각 이상은 디스크로 인한 신경 뿌리병증이나 말초신경병증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 있고, 통증은 관절 질환이나 근막통증증후군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정 교수는 “보행 장애라는 점에서 파킨슨병과 혼동되는 경우도 많지만, 척수 압박은 근력 저하·감각 이상·신경통이 함께 나타나는 반면, 파킨슨병은 동작이 느려지는 서동증이 주 증상이고 근력 저하나 감각 이상은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경미하면 보존적 치료로 진행 늦출 수 있어...“신경학적 증상 시 수술 필요”
척수 압박은 원인과 진행 정도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달라진다. 압박 정도가 경미하고 증상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으며, 퇴행성 변화가 원인인 경우에는 약물치료나 비수술적 치료로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반면, 외상·감염성 질환·전이성 종양 등으로 인해 명확한 사지 마비나 감각 저하가 동반된 경우에는 신속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정영하 교수는 “퇴행성 질환은 서서히 진행되기도 하지만, 상하지 마비 증상이 점차 심해지거나 보행에 지속적인 불편이 따른다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증상이 가볍더라도 MRI에서 척수가 뚜렷하게 눌려 있는 것이 확인되고, 진행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조기 수술을 결정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 가능성에도 제한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정 교수는 “진료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환자들이 증상을 오랜 시간 참고 지내다가 병이 심각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라고 말했다. 특히 신경 압박이 심해 이미 손상이 발생했거나, 고령 환자(70세 이상)의 경우에는 수술을 받더라도 회복이 제한적일 수 있다.
정 교수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지’, ‘물리치료 받으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증상을 방치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며 “중요한 점은, 원인에 상관없이 척수 압박으로 인한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상황에서는 수술적 치료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바른 자세가 척추를 지킨다… “마음 건강도 함께 챙겨야”
척수 압박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올바른 자세와 생활 습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영하 교수는 “최근 20~30대 환자들의 X-ray를 보면 체감상 80% 이상이 이른바 ‘거북목’”이라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사용으로 인해 목이 약 30도만 앞으로 구부러져도 경추에 약 20kg의 하중이 가해진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자세에 따라 척추가 받는 부담은 몇 배로 증가하며, 장기적으로는 퇴행성 변화에 따른 척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척추 건강을 지키려면 앉을 때는 허리를 곧게 펴고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발바닥은 바닥에 닿도록 하는 자세가 좋다”라며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었던 경우에는 반드시 가볍게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조언했다.
서 있을 때는 허리의 전만 곡선을 유지한 채 어깨를 펴고, 턱을 살짝 당겨 목과 머리가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건을 들 때도 허리를 굽히지 말고 무릎과 고관절을 함께 굽혀 들어 올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 여기에 코어 근육 강화 운동, 체중 관리, 금연 등을 병행하면 척추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척수 압박으로 인한 저림이나 운동 장애 같은 만성 통증을 겪는 환자들은 신체적인 고통 외에도 스트레스, 무기력감, 좌절감 등 심리적인 어려움까지 겪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스스로 자책하거나 혼자 참지 말고, 가까운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정신과 상담을 병행한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해졌다는 사례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활동을 유지하고, 환우회 등에서 경험을 나누며 서로 지지하는 것도 정서적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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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만성질환자의 증가, 정신건강 문제의 확산 등으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분명한 원인을 찾기 어렵거나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쉽지 않다. 이는 통증이 단순한 신체 손상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심리적·사회적 요인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하이닥은 <대한신경통증학회>와 함께 현대인의 일상과 맞닿은 주요 신경 통증 질환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환자 중심의 치료 접근법을 살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