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알츠하이머, 치료 가능한 시대 온다”… 피 한 방울로 치매 조기 탐지

  • 기자명 이진주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 입력 2025.07.24 21:00

게이츠벤처 지원 연구팀, 23개 나라에서 모은 3만 5천 건 시료 분석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등 4대 뇌질환 단백질 변화 결과 도출

혈액 기반 치매 조기 진단과 치료법 찾을 가능성 열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가 최근 “알츠하이머 진단이 더 이상 사형선고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2020년 부친을 알츠하이머병으로 잃은 뒤, 이 질환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 개발을 위한 민간 투자에 힘써왔다.

빌 게이츠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은 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과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발표된 5편의 논문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해당 연구는 국제 연구 협력체 ‘글로벌 신경퇴행성 단백질체학 컨소시엄(이하 GNPC, Global Neurodegeneration Proteomics Consortium)’이 전 세계 23개 기관이 수집한 3만 5,000건의 생체 시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대규모 연구 결과다.

GNPC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게이츠벤처(Gates Ventures)와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이 2023년 공동 설립한 연구 협력체로, 주로 알츠하이머·파킨슨 등 주요 신경퇴행성 질환을 연구한다.

빌 게이츠, “알츠하이머 진단이 더 이상 사형선고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머지않았다” | 출처: gatesnotes.com
빌 게이츠, “알츠하이머 진단이 더 이상 사형선고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머지않았다” | 출처: gatesnotes.com

2억 5,000만 개 단백질 비교…뇌질환 연결고리 찾았다
이번 연구에서 GNPC는 신경퇴행성 질환의 단백질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 23개 연구기관과 협력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으로부터 수집한 혈장, 혈청, 뇌척수액 시료 총 3만 5,000여 건을 분석하여 2억 5,000만 개 이상의 고유 단백질 측정값을 비교 분석했다.

확보한 단백질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어떤 단백질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루게릭병(ALS)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공통적으로, 네 가지 질환 모두에서 염증 반응과 면역계 활성화에 관여하는 단백질 변화가 관찰됐다. 특히 인터루킨-6(IL-6)이나 JAK-STAT 신호전달 경로에 속하는 단백질들이 여러 질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면역·염증 관련 단백질의 변화가 신경퇴행성 질환 전반의 핵심 병리 기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질환마다 고유한 단백질 변화 양상도 뚜렷했다. 알츠하이머병에서는 뇌 면역세포인 마이크로글리아 활성과 관련된 TREM2, APOE 단백질이 특징적으로 증가했고, 파킨슨병에서는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단백질 분해 시스템의 변화가 주로 나타났다. 전두측두엽 치매에서는 시냅스 연결 및 신경 발달 관련 단백질이 크게 감소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또한, 같은 질환에서도 시료 종류에 따라 단백질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점도 주목됐다. 혈장에서는 전신 염증 반응과 관련된 단백질 변화가 두드러졌고, 뇌척수액에서는 신경세포 손상이나 뇌 내 변화와 관련된 단백질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향후 혈액 기반 조기 진단 기술 개발 시, 시료의 특성에 맞는 타깃 단백질 설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뇌 대신 단백질을 본다… “치매 조기 진단 및 치료 가능성 열어”
이러한 연구 결과는 혈장과 뇌척수액, 뇌 조직 내 단백질 변화를 분석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등 주요 신경퇴행성 질환의 조기 진단 가능성과 새로운 치료 표적 발굴의 단서를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연구팀은 “이번 단백질체학 분석은 무증상 단계의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선구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연구 책임자인 마르크 수아레스-칼벳(Marc Suárez-Calvet) 박사는 “ALFA 코호트의 혈장 샘플을 종단적으로 분석해, 조기 진단과 맞춤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체 바이오마커 플랫폼의 마르타 델 캄포(Marta del Campo) 박사는 “전임상 단계에서 확보한 혈액 시료의 단백질 분석을 통해 기존 기술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초기 신호를 식별할 수 있었다"라며, “이는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국제 협력과 개방형 과학(open science)의 성과라고도 덧붙였다. 유전 신경역학 및 생물통계학 팀의 나탈리아 빌로르-테헤도르(Natàlia Vilor-Tejedor) 박사는 “이번 협업은 신경퇴행성 질환 조기 진단과 예방 전략을 정밀화하는 데 실질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빌 게이츠, “알츠하이머병, HIV처럼 만성질환으로 바꿔갈 것” | 출처: gatesnotes.com
빌 게이츠, “알츠하이머병, HIV처럼 만성질환으로 바꿔갈 것” |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빌 게이츠 “알츠하이머병, HIV처럼 만성질환으로 바꿔갈 것”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등 신경퇴행성 질환은 전 세계 5,700만 명 이상이 앓고 있으며, 고령화에 따라 환자 수는 앞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치매를 전체 사망 원인 중 7위, 70세 이상 인구에 한정할 경우 4위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질환은 여전히 발병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진단과 치료에도 많은 한계가 남아 있다. 특히 조기 진단을 위해서는 침습적이거나 고비용의 검사가 필요하며, 대부분 환자가 질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진단을 받는 실정이다. GNPC와 같은 국제 협력 연구 단체가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간다면, 머지않아 치매에 대한 조기 예방과 치료법이 개발되는 날이 머지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빌 게이츠는 ‘네이처 메디슨’ 기고문을 통해 “이제 우리는 치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조기에 개입 가능한 질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환점에 있다"라며, “HIV를 만성질환으로 바꿔낸 과학처럼, 알츠하이머병 역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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